2-5) 이학송 교수의 의학 강연집 성병의 치료법(1952).JPG

학회 및 학회지의 역사

Since 1945 ~

  • 세부학회 회장 취임 (김수웅 교수: 대한남성과학회 회장, 곽철 교수: 대한비뇨기종양학회 회장, 박관진 교수: 대한소아비뇨의학회 회장, 손환철 교수: 대한비뇨초음파학회 회장) 

  • 손환철 교수 대한비뇨의학과 총무이사 역임

  • 2월 4일,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 1층 서성환연구홀에서 대한비뇨기과학회가 주최하고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 및 서울의대 비뇨기과학교실의 공동 주관으로 처음으로 시행하였으며 이후 매년 진행됨.

  • 8월 31일, 오승준 교수는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Pan-pacific Continence Society 학술대회의 대회장​을 역임함. 

  • ​오승준 교수가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 회장을 역임함.

  • 백재승 교수가 대한비뇨기과학회장을 역임하며 한국어로만 발간되던 대한비뇨기과학회지를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고자 Investigational Clinical Urology (ICUrology) 영문판으로 변경함.

  • 9월 18일, 제31차 Annual Meeting of ICS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함. 비뇨기과학회 역사상 첫 번째로 개최한 국제대회로 서울대 김광명 교수를 조직위원장으로 선임하여 요실금 및 배뇨장애 관련 다양한 최신지견을 공유함. 미국 9.11 테러 여파로 예년에 비해 외국 회원들의 참석이 저조하였으나 내용면에서는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 받음. 

  • 9월 25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요실금학회(Interntaiontl Continence Society, ICS)에서 2001년 국제요실금학회를 우리나라 서울에서 개최하도록 유치하는 데 성공함.

  • 5월 학술위원회 산하에 의료정보소위원회가 신설됨. 이미 자체 개발하였던 SDMS라는 프로그램을 모체로 하여 정보소위원회 위원들이 그 기능을 개선시키기 위한 5개월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최종 프로그램을 완성하여 이를 “비뇨기과 관리 프로그램: URODMS (Urology Database Management System) 1.0”이라 명명. 이를 대한비뇨기과학회지 검색프로그램인 ‘ARTICLE 2.0’과 함께 1993년 11월 27일 서울의대에서 프로그램 발표회를 갖고 각 수련병원에 프로그램을 배포함.

  • 최황 교수는 2년간 대한소아비뇨기과학회 회장을 역임. 

  • 초대회장이였던 故이희영 교수가 남성과학교과서를 발간하였다.

  • 최황 교수의 책임하에 비뇨생식기계기형의 빈도를 조사한 공동연구(1989년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3월호에 게재)

  • 1990년 8월 대한의학회 의학통계조사 사업 보조금으로 이종욱이 우리나라의 방광, 신장, 신우 및 요관, 전립선, 고환 및 기타 비뇨생식기의 악성 종양의 빈도를 산출하는 전국적 조사가 수행되었으며, 연구결과는 1992년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6월호에 게재되었다.

  • 1월 21일 싱가포르에서 세계보건기구의 Andrology 워크숍이 개최되어 이희영, 이무상, 최형기 교수 등이 참석한 후 국내에 남성과학연구학회의 필요성이 논의되어 1982년 1월 7일 제1차 남성과학세미나(세계보건기구 지원,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구의학연구소 주관)가 개최되면서 대한남성과학회가 창립되었다. 1985년 1월에는 국제남성과학회 총연맹(International Society of Andrology)에 정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.

  • 7월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14차 국제비뇨기과학회에 참석한 이학송 교수는 한국지부의 승인을 얻었다. 이로서 대한 비뇨기과학회가 국제학회의 정식회원으로 가입함.

  • 비뇨기과학회의 중요한 사업으로서 학회지가 창간(대한비뇨기과학회잡지 제1권 제1호)되어 매년 2회씩 발간되기 시작함. 대한비뇨기과학회지 제1호는 이학송의 희사금으로 타과에 비해 빠르게 발행할 수 있었으며, 주근원이 편집 책임자였음. 대한비뇨기과학회 공식학술지의 편집위원장은 초대 주근원 교수가 추대됨. 학회지 1권 1호에는 이학송 회장의 창간사가 실렸고, 주근원의 「요관 수술에 관한 실험적 연구」 등 10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음.

  • 6월 20일 대한비뇨기과학회 발족, 피부과와 분리됨.  회장에 이학송, 부회장에 최재위를 선출함으로서 대한비뇨기과학회로 재발족하는 계기가 됨.

  • 학회 창립 초창기인 1949년 1월 ‘대한피부비뇨기과학회 성병예방협회 회보’를 창간한 후 제2호까지 발간하였으나 재정 사정으로 중단되었다. 

  • 5월 10일,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강당에서 조선의학협회 창립총회가 열림. 피부과비뇨기과학회는 조선의학협회 대의원으로 오원석, 최재위를 선출, 이후 개최된 조선의학협회 재창립 총회에 파견함으로써 의협의 분과학회로 가입하고 협회 산하에 흡수되어 그 명칭이 조선의학협회 피부과비뇨기과 분과학회가 됨.

  • 11월 15일 제1회 서울지방회 학술집담회를 서울의대부속병원 강의실에서 개최하였는데 이것이 사실상 제1회 조선피부과비뇨기과학회 학술대회다. 정기총회도 개최되었고 제1회 피부과비뇨기과성병학회총회도 개최했다.

  • 학회 창립 초창기인 1949년 1월 ‘대한피부비뇨기과학회 성병예방협회 회보’를 창간한 후 제2호까지 발간하였으나 재정 사정으로 중단되었다. 

​대한비뇨의학회 역대 편집위원장

연도별 국내/ 국외 논문 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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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학회지 발전의 역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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